달리다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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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ㆍ 작성일2022-07-1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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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한순간에 다 잃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명예나 권력을 잃어 하루아침에 폐인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되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나 물질을 잃어 절망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이런 말이 있다.“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었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극도의 슬픔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낙심하거나 좌절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포기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 문제에는 언제나 큰 교훈과 가르침이 담겨있다. 그 문제, 고통 때문에 평생 하나님을 부정하고 외면했던 자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평생 교회라면 담을 쌓고 살던 자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되고, 포악하고 비뚤어진 인격이 바른 인격으로 다듬어지게 되고, 과거에는 전혀 기도하지 않던 자가 바짝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게 되고, 그렇게 거만했던 자가 겸손하게 되고, 말씀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거역하던 자가 순종하는 자가 되며, 자기중심으로 살던 자가 땀을 흘리며 섬기는 자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변화된 자들에게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시며, 나아가 불신자들에게는 전도로, 신자들에게는 도전과 간증이 되는 축복된 삶을 살게 하신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역하던 당시 한 마을에 회당장인 야이로란 자에게 12살된 외동딸이 있었다. 그 어린 딸이 병들어 위중하게 되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여러 차례 간구하기를 “내 어린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오셔서 안수하여 주사 고침 받아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겸손하게 만들었나? 딸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딸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의사들을 찿아 다녔으나 효험은 없고 그 딸은 점점 죽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와 간청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의 딸은 죽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죽은 것이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어린 소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울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소녀의 장례를 치러 주는 일뿐이다. 그런데 늦게야 도착하신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네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께는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죽은 것이나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위기에도, 인간의 한계가 끝난 상황에서도 믿어야 한다. “이제는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다 망했습니다”란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때가 주님이 일하실 때이다.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 다시 살려주신다. 회복시켜 주신다.
주님께서는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님을 비웃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웃을 일이다. 주님께서는 어린 소녀에게 아람어로 “달리다굼”하셨다. 이는 ”불쌍한 어린 아이야 일어나라“는 뜻이다. 주님이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시자마자 죽었던 어린 소녀가 살아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오늘 우리 중에도 인생의 역경과 시련이 없었다면, 비바람과 폭풍우가 없었다면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를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난을 통하여 진실하게 되고, 겸손하게 되고, 온유하게 되고 엎드리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 복을 받는 계기가 된다. 오늘 우리 모두 현재의 상황, 문제만 바라보고 절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와 간청의 기도를 드려보자. 그때 주님께로부터 이런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달리다굼”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역하던 당시 한 마을에 회당장인 야이로란 자에게 12살된 외동딸이 있었다. 그 어린 딸이 병들어 위중하게 되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여러 차례 간구하기를 “내 어린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오셔서 안수하여 주사 고침 받아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겸손하게 만들었나? 딸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딸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의사들을 찿아 다녔으나 효험은 없고 그 딸은 점점 죽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와 간청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의 딸은 죽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죽은 것이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어린 소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울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소녀의 장례를 치러 주는 일뿐이다. 그런데 늦게야 도착하신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네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께는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죽은 것이나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위기에도, 인간의 한계가 끝난 상황에서도 믿어야 한다. “이제는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다 망했습니다”란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때가 주님이 일하실 때이다.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 다시 살려주신다. 회복시켜 주신다.
주님께서는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님을 비웃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웃을 일이다. 주님께서는 어린 소녀에게 아람어로 “달리다굼”하셨다. 이는 ”불쌍한 어린 아이야 일어나라“는 뜻이다. 주님이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시자마자 죽었던 어린 소녀가 살아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오늘 우리 중에도 인생의 역경과 시련이 없었다면, 비바람과 폭풍우가 없었다면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를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난을 통하여 진실하게 되고, 겸손하게 되고, 온유하게 되고 엎드리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 복을 받는 계기가 된다. 오늘 우리 모두 현재의 상황, 문제만 바라보고 절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나와 간청의 기도를 드려보자. 그때 주님께로부터 이런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달리다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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