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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에 숨겨진 감동적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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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작성일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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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는 과정이 영화로 재연되었지만, 그 당시의 실제 상황을 다 알 수는 없다. 그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이 오랜 세월 침묵 끝에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다. 당시 38세였던 "챨스 래히틀러" 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으로, 그 당시 타이타닉호의 참사의 자세한 상황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을 썼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 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대신 남아 있기를 선택했다. 나는 큰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 라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한 여성에게???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면서,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여보 그러지 말고 어서 타라" 고 말하자, 여성은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것이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당시 에스더 4세(당시 세계 최고 부자) 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여보, 사랑해요" 라며 이별을 고할 때, 선원이 에스더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그는 "사람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며, 다른 여성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에스더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는 타이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자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다.

미국 Macy's 백화점의 창업자 "슈투라우스"씨는 세계 두 번째 부자였다. 그는 그의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려 애썼지만 태우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가겠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거예요" 라며 남편을 두고 구명보트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부부는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다. 배가 점점 기울어져 가는 상황에서 사회 저명인사들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보트를 양보하고 죽어갔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명 중 이등 항해사 "챨스 래히틀러" 외에는 모두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명을 같이 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서로를 향해 "사랑합니다" 라고 외치며 마지막 죽음을 맞이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는 희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다"? "다니엘 알란 버틀러" 란 사람은,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어느 목사님께서 카톡으로?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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