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받은 바나바 (그의 인격을 중심으로: 행 11:19-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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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ㆍ 작성일2019-02-0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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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긍정적인 사람(행 9:26-27) =
바나바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분위기였다. 그 교회의 분위기는 과거에 붙잡혀 현재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다시 사울이 교회에 들어 왔을 때를 생각해 보자. 사울이란 자가 교회에 들어왔다. 사울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사귀고자” 교회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두려워하며 불신하였다. 사울의 과거 때문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상처를 입힌 자이다.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핍박한 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였다. 주님의 가르침은 “원수를 사랑하라” 였다. 주님의 가르침과 사람의 감정과 판단 사이에서 주님의 가르침은 너무 차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불평, 원망할 수 있었다. 그것도 교회에 들어와 교인들과 사귀려고 교제의 악수를 내미는데 거절한 것이다.
바나바도 사도들이나 성도들을 보고 “원수를 사랑하라” 는 주의 말씀을 갖고 비난하거나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갖추지 못한 부족한 면을 보고 뒤에서 판단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나서서 부족하게 보이는 것을 스스로 채우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문제를 보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으로 나누이게 된다. 사람이 부정적인 면에서 문제를 보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똑같은 문제인데도 귀하고 아름답고 감사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동일한 그릇의 물을 보는데도, 없는 것을 보는 자가 있고, 있는 것을 보는 자가 있다. 긍정적인 자는 문제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보는 자이다. 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긍정적인 사람 바나바를 통하여 사울을 얻게 되었고, 교회는 더 커다란 그릇으로 자라게 되었다. 사울을 영접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과거의 사실로 판단하지 않는 넓어지는 마음과 신앙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5) 행동하는 사람(행 9:27) =
바나바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마음에 느끼고 판단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 열매를 맺는 자였다.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왔을 때 사울을 바라보고 말한 자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27절에 보면, “다” 라는 말은 “전체” 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신앙은 행동하여야 한다. 교회의 부족한 것을 보고 말만 하고 앉아 있는 자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고 남의 일로 미루는 것도 아니다. 바나바는 부족한 것을 볼 때 자기가 해야 할 일인 것으로 알고 행동하였다. 오늘의 교회도 말만하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 말없이 행동하고 있는 바나바가 요구되고 있다.
6) 인정받는 사람(행 4:36, 11:22, 25) = 바나바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자였다.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에게 자기를 나타내며 말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그러나 바나바는 세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가. 주의 종의 인정 = 사도들의 인정(행 4:36).
바나바의 인격과 신앙은 신앙의 지도자인 주의 종들로부터 인정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속한 단체나 모임의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귀하다. 바나바의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행위가 사도들과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이름을 “바나바” 라 지어 주었던 것이다.
나. 교회의 인정(행 11:22) = 안디옥에서 수많은 헬라인들이 주를 믿고 주께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의 인격과 신앙을 인정하여 중요한 일에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교회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다. 이웃의 인정 = 사울의 인정(행 11:25) = 바나바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사울은 바나바를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바나바가 자기의 고향으로 찿아 왔을 때 바나바를 따라서 안디옥에 와서 함께 주의 일을 하였다(행 11:26).
사람이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된다. 사람의 인정은 그 열매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좋은 열매의 판단과 가치는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그 마지막을 보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나무의 열매가 자라는 도중에 아무리 크게 달렸다 해도 그 열매의 진가는 마지막에 가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열매 맺는 삶에 인내해야 한다.
바나바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분위기였다. 그 교회의 분위기는 과거에 붙잡혀 현재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다시 사울이 교회에 들어 왔을 때를 생각해 보자. 사울이란 자가 교회에 들어왔다. 사울은 예수를 믿고 거듭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사귀고자” 교회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두려워하며 불신하였다. 사울의 과거 때문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상처를 입힌 자이다.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핍박한 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였다. 주님의 가르침은 “원수를 사랑하라” 였다. 주님의 가르침과 사람의 감정과 판단 사이에서 주님의 가르침은 너무 차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불평, 원망할 수 있었다. 그것도 교회에 들어와 교인들과 사귀려고 교제의 악수를 내미는데 거절한 것이다.
바나바도 사도들이나 성도들을 보고 “원수를 사랑하라” 는 주의 말씀을 갖고 비난하거나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갖추지 못한 부족한 면을 보고 뒤에서 판단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나서서 부족하게 보이는 것을 스스로 채우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문제를 보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으로 나누이게 된다. 사람이 부정적인 면에서 문제를 보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똑같은 문제인데도 귀하고 아름답고 감사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동일한 그릇의 물을 보는데도, 없는 것을 보는 자가 있고, 있는 것을 보는 자가 있다. 긍정적인 자는 문제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보는 자이다. 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긍정적인 사람 바나바를 통하여 사울을 얻게 되었고, 교회는 더 커다란 그릇으로 자라게 되었다. 사울을 영접한 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과거의 사실로 판단하지 않는 넓어지는 마음과 신앙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5) 행동하는 사람(행 9:27) =
바나바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마음에 느끼고 판단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 열매를 맺는 자였다.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왔을 때 사울을 바라보고 말한 자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27절에 보면, “다” 라는 말은 “전체” 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신앙은 행동하여야 한다. 교회의 부족한 것을 보고 말만 하고 앉아 있는 자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고 남의 일로 미루는 것도 아니다. 바나바는 부족한 것을 볼 때 자기가 해야 할 일인 것으로 알고 행동하였다. 오늘의 교회도 말만하고 앉아 있는 사람보다 말없이 행동하고 있는 바나바가 요구되고 있다.
6) 인정받는 사람(행 4:36, 11:22, 25) = 바나바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자였다.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에게 자기를 나타내며 말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그러나 바나바는 세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가. 주의 종의 인정 = 사도들의 인정(행 4:36).
바나바의 인격과 신앙은 신앙의 지도자인 주의 종들로부터 인정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속한 단체나 모임의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귀하다. 바나바의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행위가 사도들과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이름을 “바나바” 라 지어 주었던 것이다.
나. 교회의 인정(행 11:22) = 안디옥에서 수많은 헬라인들이 주를 믿고 주께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의 인격과 신앙을 인정하여 중요한 일에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교회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다. 이웃의 인정 = 사울의 인정(행 11:25) = 바나바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사울은 바나바를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바나바가 자기의 고향으로 찿아 왔을 때 바나바를 따라서 안디옥에 와서 함께 주의 일을 하였다(행 11:26).
사람이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된다. 사람의 인정은 그 열매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좋은 열매의 판단과 가치는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그 마지막을 보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나무의 열매가 자라는 도중에 아무리 크게 달렸다 해도 그 열매의 진가는 마지막에 가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열매 맺는 삶에 인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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