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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권사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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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20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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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저에게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가는 길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해 10월말 한국 통영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폐렴으로 입원하시며 호흡기를 달고 계셨던 어머니는 영상통화 속에서 계속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엄마, 코로나 때문에 못가요. 정말 못가요”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치매이셨던 어머니는 넷째 딸을 알아보실 때는 계속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의 상황이 더 악화가 되어서 생명연장 장치를 하며 길어야 3주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진작 가지 못했을까 하는 온갖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원망 속에서 “엄마, 내가 갈 때까지 살아계셔요”라고 수없이 기도하며 한국으로 향했다.

2주 격리를 해야 했다. 격리 중에는 사망 소식을 들어도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기내에서 물 한모금도 못 마시고 도착해서 여러 방역소를 통과하고 격리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하지만 격리시설이 만실인 가운데 비어있는 생활격리소를 찾기 위해 아침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들으며 십자가 귀걸이를 한 학생의 도움을 받아 공항도착 6시간 만에 방역택시를 타고 격리소에 도착했다. 집을 떠난지 근 24시간 만에 도착하여 긴장이 풀려 주저 앉아보니 먹을 것이 없었다. 거의 이틀을 굶었는데 큰언니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큰언니는 웃으면서 “믿음이 연약한 자야,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 듬뻑 먹으라”고 했다. 종교가 다른 언니의 입으로 우리 주님은 저를 꾸중을 하셨던 것이다. 아니 위로해 주신 것일까? 2주의 격리 기간은 나약해져 있던 저의 믿음을 다시 깨우는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매일 기도하고 찬송하고, 매일 기도하고 말씀읽고 필서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어머니도 지켜주셨다.

주님을 다시 영접하고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제일 그리웠던 것은 옆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러줄 넷째 딸이었다. 50년 만에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어머니가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기도와 찬양을 듣고 싶어 하셨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셨던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는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엄마의 회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 속에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하며 빛나던 시절도 있었고, 엄마의 회개 속에는 엄마로 인해 어린 시절 종교가 바뀐 세 딸에 대한 걱정도 있었을 것이다. 전도하러 오신 집사님들에게 소금 뿌리고, 물 한바가지 뿌렸다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기도 소리에 항상 반응하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제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뵙고 기도해 드릴 수 있었음은 어머니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이었다.

둘째 딸이 아픈 상황 속에서 딸을 두고 아픈 엄마에게 갔던 힘들고 먼 길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제게 길을 열어주시고, 제 생각보다 더 풍성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안다. 엄마를 포기하지 않게 하셨고 저와 딸까지 지켜주셨다. 어머니는 치매로 많은 기억을 잃으셨지만 저의 기도와 찬송이 어머니 가슴에서 씨앗이 되고 희망이 되셨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코비드19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변화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끝을 볼 수 없는 길에 서서 나의 길도 바라보고 주님이 앞서 가신 발자국도 바라본다. 늘 말씀 속에 살며 주님과 함께 믿음과 순종으로 걸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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